뒤틀린 속삭임 -공포단편소설
비는 내렸다. 회색 도시 위로.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흔적을 남겼다. 민준은 낡은 아파트 창가에 서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텅 빈 거리.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오직 비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처럼.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세상의 결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처음엔 아주 미미했다. 벽지의 얼룩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가구 모서리가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휘었다. 밤에는 벽 속에서 뭔가가 긁는 소리가 났다. 벌레 소리가 아니었다. 더 깊고, 더 이질적인 소리.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가 현실의 얇은 막을 갉아먹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바람 소리 같았다. 혹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 하지만 점점 더 명료해졌다. 그의 귓가에, 그의 뇌리에 직접 속삭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명확했다. 파괴. 끝.
그는 저항했다. 약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잠들려 애썼다. 그러나 속삭임은 잠 속까지 따라왔다. 꿈에서 그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형체들 사이를 걸었다. 차가운 기하학의 도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면 속삭임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어느 날 밤, 그는 편의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골목은 어둡고 축축했다. 술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눈은 흐릿했고, 입에서는 악취가 났다. 남자는 민준에게 시비를 걸었다.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라면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속삭임은 명령이 되었다.
해.
민준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았지만, 통제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다른 존재에게 조종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들고 있던 우산으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번. 두번. 둔탁한 소리가 빗소리에 섞였다. 남자는 소리 없이 쓰러졌다. 바닥에 붉은 웅덩이가 퍼져나갔다. 비에 씻겨 희미해졌다.
민준은 가만히 서 있었다. 비를 맞으며.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공포도,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공허함과, 속삭임이 잦아든 후의 기묘한 평온만이 있었다. 그는 시체를 골목 구석으로 끌었다. 쓰레기 더미 뒤로.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몇 번 더 있었다. 밤에 배회하는 노숙자. 공원에서 혼자 울던 여자. 어두운 주차장에서 차를 기다리던 남자. 이유는 없었다. 속삭임이 명할 때, 그는 따랐다. 그의 의지는 마모되어 사라졌다. 그는 텅 빈 껍데기였다. 기이한 차원의 의지를 수행하는 도구.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도시는 잿빛이었다. 사람들은 무심히 거리를 오갔다. 아무도 몰랐다. 그들 사이에 현실의 균열을 걷는 자가 있다는 것을. 다른 세계의 오염이 그의 손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민준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물웅덩이에 어른거렸다. 속삭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더 크고, 더 절박하게. 마치 무언가가 오고 있다는 듯이. 그는 현관으로 향했다. 낡은 문을 열고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속삭임이 이끄는 곳으로. 이 썩어가는 도시의 심장부로. 종말을 향해. 혹은 새로운 시작을 향해. 어느 쪽이든, 피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잿빛 도시와 기이한 차원 사이에 끼어버린, 저주받은 영혼의.